[트레인스포팅] 참을수 없는 존재의 우울함

`멈추지 않는 자만이 세상을 바꾼다'. 미친듯이 거리를 질주하는 젊은이. 그 뒤를 따라 나타나는 자극적인 음료광고. 얼마전부터 청량음료 TV광고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전세계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온 영국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서 발췌해온 것.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에서 처음 기차가 등장했을 때, 플랫폼에 들어오는 기차의 일련번호를 알아맞히는 게임에서 유래된 단어. 하지만 영화는 트레인스포팅과 별 관련이 없다. 학교는 웬만큼 졸업했으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는 별로 보이질 않는,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하기만 한 젊은이들의 현실도피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들의 위안처는 찌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약뿐. `트레인스포팅'은 마약을 소재로 한 `마약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전 `쉘로우 그레이브'란 영화를 발표한 이후 할리우드의 집요한 유혹을 받아왔을 만큼 독특한 연출세계를 구축해온 대니 보일 감독은 여기에서도 특유의 빠른 화면전개와 거친 대사 등 충격적인 연출로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마약을 끊겠다고 결심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렌튼(이완 맥그리거). 실업자수당도 포기하고 `성실하면서도 진실한 마약취미'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렌튼의 친구들도 대부분 마약에 빠져있다. 훤칠한 미남으로 부드러운 매너와 숀 코너리에 관한한 백과사전인 식 보이(자니 리 밀러). 순진하기 짝이 없는 스퍼드(이완 브렘너). 등산과 이기 팝에 심취해 있었으나 결국 마약에 찌들어 죽고 마는 토미(케빈 맥키드). 유일하게 마약에 중독되지 않았으나 자기 파괴의 욕망으로 폭력에 집착하는 벡비(로버트 칼라일). 이들은 모두 냉엄한 현실과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저마다 끓어오르는 열정을 간직하고는 있으나 현실은 이들에게 좌절과 분노만을 안겨준다. 마약을 얻기 위해서 이들은 상점을 털거나 강도행각을 벌이고, 때로는 수표를 위조하기도 한다. 방안을 돌아다니던 아기가 마약을 주워먹고 숨지거나 디스코텍에서 만나 격렬한 섹스를 나눈 여자가 10대 소녀라는 사실 또는 마약과용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따위의 장면들도 이들의 퇴폐적이고 난폭한 절망과 좌절 앞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좌약식 마약을 변기에 빠트린 뒤, 이를 찾기 위해 변기 속을 뒤지던 렌튼이 환각상태에서 변기 안으로 잠수하는 장면은 충격과 현란한 영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 이기 팝과 브라이언 에노, 언더월드 등 영국 팝아티스트들의 멋진 배경음악도 노골적이고 불경스런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