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데보라] "장애-마약은 이길수 있다"

경북 예천에서 성기가 없는 `배냇병신'으로 출생. 중학교 중퇴, 상경. 약장수판, 서커스단, 소년원 전전. 스무살에 의대생과 동반자살 기도. 이후 화류계에서 몸을 담는 등 곡절을 겪으며 살았다. 지금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국제마약본부의 마약퇴치 사절로 전세계를 돌며 활동. 이 데보라씨(56.본명 이정희). 기구한 운명의 그녀가 `그래도 여자로 살고 싶었는데'(사람과 사람 간)라는 고백록을 펴냈다. "열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이 `남 앞에서는 절대 옷을 벗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사춘기 때. 무작정 상경했다. 서커스단과 소년원 등 음지를 전전하다 청량리 역전에서 성폭행당했다. 몸을 버렸다는 두려움보다 치부가 드러난다는 절망감이 더했다. 15세때의 일. 의대생과 못 이룰 사랑을 나누다 동반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정상으로 살고자 수술도 받았지만 늘 실패했다. 그런 몸으로 화류계 생활을 시작했다. 요정 마담으로 있다가 `정인숙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1년간 수감. 이 땅에서 살기 힘들었던 20대의 그녀는 홍콩으로 탈출, 휠체어를 탄 40년 연상의 영국인 노인과 계약 결혼을 한다. 스위스에서 7년간 생활. 노인이 사망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위장 결혼. 계약 결혼이 끝나면서 받게 된 4만달러로 LA에서 마사지팔러 사업을 시작, 방송을 탈 정도로 대성공. 돈으로 쾌락과 마약에 몸을 내맡겼다. 콜롬비아 마피아의 일원이 되어 딜러와 마약 운반책으로 활동. 세월은 썩은 늪이었다. 마침내 탈세와 마약 때문에 세크라멘토 교도소로 가게 된다. 18개월 복역. 6개월은 금단 증상 때문에 광인처럼 보냈다. 이상 40대 말까지의 이야기. 변호사 프레이드가 선물한 성경을 교도소안에서 읽으면서 50년 생애를 처음으로 참회. 변호사는 마지막 친구였다. 90년 프레이드의 안내로 선교회를 찾아 마약과 매춘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 대변신. 이후 그녀는 마약퇴치운동 등 활발한 활동을 국내외에서 펼치고 있다. "장애를 가졌거나 마약에 빠진 분들에게 나처럼 살아온 사람도 있으니 용기를 가지라는 뜻에서 책을 썼습니다. 쓰는 동안 한없이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