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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게 재 일 : 1997년 08월 04일 7 面(10 版)
▶ 글 쓴 이 : 노경수

[중앙시평] 재키림과 김대건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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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비디오자키 (VJ) 로 활약하던 재키 림이란 젊은이가 구속됐다.대마와 마약을 흡입한 혐의라고 한다.

재키 림은 검찰조사과정에서 "오랜 외국 생활후 귀국해 연예계에 입문했지만 주변의 따돌림이 심해 고민해 왔으며, 빈번한 술자리 참석 요구와 참기 힘든 수모를 당하는등 연예활동에 환멸을 느껴오다 마약에 손을 댔다" 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재키 림은 지극히 불행한 경우지만 지금 한국에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후 아까운 재능과 지식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 변두리에 머무르거나, 아니면 다시 한국을 떠나버린 인재가 하나 둘이 아니다.이질적 문화권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단 오늘에 국한된 일만은 아니다.

1백50여년전 순교한 김대건 (金大建) 신부의 경우도 그러했던 것같다.한국인 최초의 해외 유학생중 한사람이었던 김대건은 '중국말을 중국인처럼 능숙하게 하고, 라틴어를 쉽사리 구사했으며,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한…' 6개 국어를 말할 수 있는 수재였다.보장된 삶에 대한 유혹을 접고 치열하게 이상과 현실을 접목시켜 나아간 이 젊은 개척자는 26세로 순교하기까지 당시 젊은이들에게 변화하는 세계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라는 새로운 문화를 전통문화속에 용해시키는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었다.그러나 구한말의 꽉 닫힌 사회 분위기는 새로운 문화의 접근을 용납하지 못했고, 결국 그의 뛰어난 재능과 그가 전해주려 했던 새로운 문화는 국가적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한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일세의 종교 지도자와 재키 림을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 (語不成說) 일는지도 모른다.또 재키림의 마약복용을 용서하자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그들이 새롭게 재편돼 가는 세계적 흐름의 한 가운데서 변화를 경험하고, 그것을 다시 한국적 상황에 이식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재키 림의 구속을 목도하면서 더욱 우려되는 사실은 이번 사건이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이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의 신호탄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다.

바로 해외 유학생 문제다.대학생뿐만 아니라, 비록 일부에서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돈봉투와 체벌로 얼룩진 교육현장, 사교육비로 통칭되는 버거운 가계부담,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교육의 질 때문에 어린 학생들까지도 해외로 나가 공부하고 있다.97년 현재 해외 유학중인 초.중.고등학생만도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대학 이상의 유학생수는 통계를 잡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이제 몇년 후면 이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그러나 이들이 귀국했을때 장밋빛 미래만이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니다.그렇지 않아도 지금 일선 교육현장은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문화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채 귀국한 어린 학생들과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익숙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여지가 매우 높다.대학이상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사회가 재편된다면 그들이 당초 목표했던 직업을 구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들과의 마찰도 예상할 수 있다.해외교포들의 경우 모국어가 서투르고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찾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새로운 경쟁상대로 급부상하고 있는 후발개도국들의 추격을 물리치고 다음 세대에서도 발전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인적 자원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려 세계 최고수준으로 성장시켜야만 한다.그래야 세계가 한 장 (場)에서 경쟁하는 21세기에도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외국에서 직접 현지문화와 삶의 방식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미래 국가건설에 절대 필요한 전문지식과 현지 사정을 알고 돌아온 유학생들은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만약 우리가 귀중한 자산인 유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배려하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활력과 에너지를 사장 (死藏) 시켜 성장의 한계를 맞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국가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것이다.

[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마음과 뇌의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