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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인 반응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끼는 친구, 혹은 동료가 약물이나 음주문제에 빠지게 되면 우리도 그 사람들과 똑같이 그 사실을 ‘부정’(denial)하게 된다. 부정은 불안과 공포를 조절하려고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거짓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 그래, 지난 방에 그는 술이 조금 과했어. 그러나 그렇게 나빴던 것은 아니야. 정말 원했었다면 그만 마실 수도 있었을 거야. 작년에도 그 사람은 몇 주 동안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도 잘 지냈잖아.” 혹은 “그녀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웃기지마. 누구든지 술을 많이 마시면 취해서 비틀거릴 수 있는 거지. 그래도 그녀가 아이들을 한번도 소홀하게 대하는 것을 본적이 없어.”혹은 “내가 그를 잘 보호하기만 하면 아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혹은 “그래, 그는 가슴의 통증과 불안 때문에 지난달에 입원했지만 괜찮을 거야. 술도 더 적게 마시잖아.” 혹은 “그녀가 약에 중독 되었다고? 자, 자, 그것은 의사가 처방해준 약들이야.”라고 하거나 마침내는 “그래, 그는 너무 지나치게 마셨어.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의 부인이 지나친 거야. 세상에, 남편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르다니 상상이나 돼?” 이렇게 부정은 불안을 조절하는데 사용되는 정서적인 차양이다.

우리 문화에서 질병에 대한 고정된 태도는 사람들에게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도록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회에서 음주자를 심판하고 배척할지 번연히 알면서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음주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누군들 부정하지 않겠는가? 사회의 이런 부정적인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도덕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약물에 중독 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부정은 그것이 좋은 의도이기는 하지만 어린 자녀에게 “별거 아니야. 어머니는 조금 흥분했을 뿐이야. 조용히 하고 있어. 어머니를 화나게 하지마. 주무시고 나면 곧 괜찮아 지실거야.”라고 잘못된 설명을 하도록 한다.



부정이 이런 방법으로 사용되면 자녀들은 현실을 잘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어린이가 인지적, 정서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는 현실이 무엇이고 또 어떤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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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금을 내고 다른 사람을 빼내주고, 그 사람의 잘못을 감추어 주어서 약물과 관계된 잘못된 행동 결과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 시도들이 결국 약물에 중독된 사람에게 부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회가 된다. 가족들은 이 사람이 정말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더 잘해 나갈 수 있도록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아 주거나’, ‘경제적으로 쪼들렸을 때’ 대부를 해주면 그런 상황에서 구해줄 수는 있겠지만 생활을 위협하는 심각한 만성적인 질환으로부터 구해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런 병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치료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훌륭한 복사이기도 한 어떤 치료사가 오후에 새로운 환자를 만났다. 치료사는 그 사람이 음주 때문에 생기는 공포에 대해서 한시간 반 동안이나 마음을 열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현재 알코올중독 상태라는 것과 앞으로 치료과정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 그 사람은 진단명과 치료 계획, 치료를 위한 병가를 요청하는 의뢰서에 서명한 후에 다음날 상사에게 가져 갈 편지를 받아갔다. 다음날 아침 9시 정각에 치료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 사람의 부인으로 “우리는 제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우리끼리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잠깐만요.” 치료사는 그 남자의 진료기록부를 찾아서 “어제 왔었던 김 선생님에 대해 하시는 말씀인가요?”하고 물었다.

“예”

“김 선생님은 지난 2년 동안 음주량이 아주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기억상실을 경험했으며 수수로는 음주량을 조절할 수 없고, 잠들기가 몹시 힘들며, 과음한 다음날은 몸이 떨리고, 음주문제 때문에 당신과도 계속 다투고 있고, 작년에도 술을 끊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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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하지만 내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예요. 저는 그의 상사에게 전화로 며칠동안  결근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 드리려고 해요. 제가 남편이 술을 끊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괜찮아 질 거예요.”

이 부인은 멍청한 사람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남편을 파괴시키려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무서웠던 것이다. 남편을 구하려는 이러한 시도나 이 병이 갖고 있는 심각성을 부정하는 것, 또 남편의 이런 상태를 병이라고 생각하고 치료하려고 하기 보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려는 노력들이 성공적인 치료를 시작할 가능성을 지연시킨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중독 질환으로 고통을 받게되면 죄책감이라는 정서반응이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문화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 부인이 술에 취해서 들어온 남편에게 한 말을 들었어?” 이런 이야기들 뒤에는 부인이 한 말 때문에 남편이 계속 술을 마신다는 억측이 숨어 있다. 이런 종류의 죄책감은 오래 참아지거나 견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화학 물질에 중독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은 가끔 이런 죄책감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오든 나쉬는 그의 시에서 이것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녀가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시고 그녀는 그가 술을 마시기 때문에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그 사실을 둘 다 인정하지는 않으리니.”

시란 그 강력한 힘을 통해서 인간 경험의 증류된 진수를 사건의 핵심에 재빠르게 침투시킨다. 이들 싯구들은 배우자와 알코올 중독자 간의 죄책감이 비난으로 투사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투사는 그 중 한 사람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는 착각을 담고 있다). 투사는 배우자가 변화를 고려할 수 있는 자아 인식을 발달시키는 것을 저지한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의심이라는 딜레마에, 배우자는 그와 똑같이 유사한 반복적인 행동 양상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폼나다!!!

중독자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역시 책임이 투사된다. “오늘밤에는 너희 아버지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해. 아버지는 화나시면 술을 마시잖니?”하는 식으로 아버지가 음주하는데 아이들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지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런 투사적인 비난 때문에 아이들은 무엇이 실재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평화를 만들거나 중재자의 역할을 기대 받으면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만으로는 가족을 도울 수 없다는 무능력함 때문에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투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궁지에 빠져 있을 때 우리가 흔히 경험하게 되는 느낌으로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책임져야 할 일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성숙의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비통함(Grief)은 가족이 중독에 대해 나타내는 특징적인 정서 반응이다 가족들은 중독된 가족원과 누렸던 과거 생활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죽음이나 제사로 확인될 수 있는 깨끗하고 분명한 상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슬픔이 치유되기 마련이지만 이처럼 만성적으로 길게 연장되어 있는 상실의 기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후자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신체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서로간에 있어야 할 의미 있는 만남이나  부부관계, 정서적인 뒷받침은 없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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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족의 비통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약물남용의 행동은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착한 아이”가 원래 건강하였던 부모와 함께 지냈던 행복한 어린 시절을 상실해서 슬프고 풀이 죽어 있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된다. 사랑의 열정을 상실했기 때문에 비탄에 빠진 배우자는 쉽게 잊혀져 버린다. “시내에 있는 선술집”이란 흘러간 유행가는 술을 마실 때 부르기에 좋은 야한 노래며 축제를 위한 언어들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만약 당신이 그 노래가 담고 있는 우울함을 그대로 느꼈다면 그 노래를 결코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사는 술독에 빠진 남편이나 아내를 기다리는 사람이 부를 노래이지, 술을 마시고 있는 본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노래 가사는 상길의 아픔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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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는 선술집이 있어요. 나의 진실된 사랑이 그를 그곳에 머물게 해요,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며 포도주를 마시는 그. 그는 결코 나를 생각지 않아요.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이제 더 이상 당신과 함께 머물 수 없어요. 내 하프를 수양버드나무에 걸어 둘께요. 내 사랑, 이제는 영원히 안녕…”

어떤 부인은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자신이 약간 실성한 것 같다고 말하였다. “나는 마치 남편을 술병에게 빼앗겨 버린 것처럼 느꼈어요. 상대가 다른 여자였다면 그를 되찾기 위해 싸우기라도 하겠지만. 술병은…오!” 그 부인이 누구와 싸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미 이야기한대로 죽음 때문에 친척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투쟁”의 일부는 직접적으로 그녀 자신에게로 향한 것이었다는 것이 금방 밝혀졌다. 그 부인은 “아마 내가 그를 좀 더 사랑했다면, …내가 그에게 충분히 ∼한 여자였다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가족을 사별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슬픔을 다 쏟아낼 수 있도록 그녀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 도와주는 사람은 배우자인 그녀 역시 질병의 희생자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녀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감정과 상실한 이에게로 향하는 감정을 분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결국은 이런 극도의 슬픔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버림을 받아서 비통해 하고 있을 때는 보통 더 분명해 보이는 슬픔에다 화를 내게 된다. 이때 화가 표출되는 방향이나 순간이 아주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부인처럼 화가 자신에게로 향할 수도 있다. 혹은 단순하게 꽉 차 있어서 어떤 방향으로도 향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화’라고 하기보다는 보통‘좌절’, ‘분노’, 혹은 ‘상처’라고 말한다.

‘아픈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당치않다고 생각하면서 알코올 중독자인 부인 대신 가사일을 쭉 도맡아 해오고 있는 어떤 마음 착한 남편이 속으로는 잔뜩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은 주위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부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고 속으로 분노를 삭이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몽땅 쏟아 부으며 이로 인해 상처받고 있었다. 어느 날 상담자가 그에게 상처받을 부인이 옆에 없으니까 품고있는 분노를 말로 표현해서 밖으로 내뿜어 버리라고 하자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나중에는 아주 절박한 심정이 되어서 주먹을 꽉 쥐고 의자를 치면서 “제 아내는 그 동안 내가 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모를 거예요. 아내가 아프다는 것은 알지만 나도 이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내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에게도 정말로 필요한 것들이 있단 말예요!”하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알코올 중독자가 배우자의 욕구를 더 이상 채워주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화를 말로 표현해 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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