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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上. 번지는 에이즈

[기획/연재, 주요뉴스, 사회] 2000.08.20 (일) 18:26

에이즈는 더이상 동성애자나 매춘 여성.호색한(好色漢)들만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 한번의 호기심, 술김에 저지른 한차례의 실수 곁에도 에이즈가 함께 있다. 이른바 '일상(日常)에이즈 시대' 가 다가온 것이다.

본지 취재 결과 '평범한' 남편으로부터 감염된 '보통' 주부가 이미 60명을 넘어섰고, 생애 첫 성접촉에서 덜컥 에이즈에 걸린 10대들도 있다.

20일 현재 전체 감염자 1천1백97명 가운데 10명 중 6명(60.4%)이 이성간 성 접촉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에이즈〓동성애' 란 등식은 이미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특히 원조교제.총각파티.섹스관광 등 신종 성(性)일탈을 통한 에이즈 감염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에이즈는 이제 '확률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

◇ 한번의 호기심이 부르는 재앙〓컴퓨터 회사 사장인 30대 초반의 K씨는 올해 초 결혼 2개월 만에 받은 에이즈 판정으로 신혼의 단꿈이 무너졌다.

결혼 4개월 전 만취상태로 서울 H호텔 뒷길에서 '여장(女裝)남자' 와 가진 한차례의 성접촉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 휴학 중인 고교 3년생 L군. 1998년 말 동네 호프집에서의 18번째 생일파티가 끝난 뒤 "어른이 된 기념으로 총각딱지나 떼자" 는 독서실 선배와 친구들의 '유혹' 으로 서울 근교 사창가를 찾았다.

두달 후 성병 공포증에 시달리다 찾은 보건소에서 L군은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술김에' '호기심에' '재미삼아' 벌이는 성인.청소년들의 성 일탈이 느슨해진 경각심 속에 에이즈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최근 서울 한 보건소에서 에이즈 판정을 받은 전문대 1년생 K씨(19)는 "PC통신 채팅으로 만난 여성들과의 '번개섹스(번섹)' 에서 감염됐다" 고 말해 충격을 던졌다.

PC 통신을 통한 호기심 많은 신세대들의 '인스턴트성 성접촉' 이 에이즈 감염의 신종(新種)감염 경로로까지 등장한 것이다.

10대 에이즈 감염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예방 홍보교육에도 불구하고 매년 꾸준히 증가, 올 상반기까지 모두 24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 주부.노인들이 위험하다〓올해 남편으로부터 감염된 에이즈 주부는 전체 여성 감염자(14명)의 43%인 6명. 매춘 여성들의 에이즈 감염 발견이 계속 줄어든다는 정부 통계대로라면 일반 주부들이 매춘 여성보다 에이즈에 더 취약하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가 된다.

서울대 의대 최강원(崔康元.감염내과)교수는 "일반 주부들의 감염 확산은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한 에이즈 실태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라고 우려한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에서는 주부 에이즈가 신생아에게 수직 감염된 비극적인 경우도 있었다. '설마…' 하며 그동안 간과해 왔던 60대 이상 노인 에이즈도 위기 상황에 돌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8년까지 20명에 불과했던 60대 이상 감염자가 최근 1년 반 사이 36명으로 두배 가까이로 늘었다. 올 상반기만 5명의 감염이 확인됐다.

서울대 의대 오명돈(吳明燉)교수는 "음지에서 확산되는 노인 동성애와 노인들을 표적으로 한 신종 매매춘의 증가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고 말한다.

"파고다 공원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일명 '드링크 아줌마 매춘' , 등산로 주변에서 이뤄지는 '다람쥐 아줌마 매춘'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 환경의 타락이 에이즈 발병률을 높이고 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창우 사무국장)는 것이다.

한편 98년까지 감염자 8백76명 중 1백61명(18.4%)을 차지, 최대 위험군이었던 '외항 선원' 의 경우 이젠 연 평균 5명 내외로 감염자 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 다양화한 해외 감염 경로〓빈번해진 외국행은 그 자체가 에이즈의 커다란 수입망이 돼버렸다.

동남아 '섹스관광' 에서 소위 '마사지 숍' 을 통한 감염은 이미 에이즈 감염의 주요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태국 매춘 여성들의 에이즈 감염률은 27%. 네명에 한명꼴인 에이즈 숲속에서 감염을 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엔 ▶조기 유학생▶상사 주재원▶해외 취업자들이 현지인들로부터 감염돼 한국으로 U턴하는 일이 쉬쉬 하는 가운데 크게 늘고 있다.

올들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회식자리에서 술에 만취한 상태로 중국의 매춘 여성과 즉흥 성접촉을 한 국내 기업 중국지사 간부가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20대 초반의 조기 유학생 P군은 에이즈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 케이스. 고등학교 1학년 때 도미(渡美)해 천신만고 끝에 명문대 진학에 성공했지만, 한두차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성관계를 맺은 게 불씨가 됐다. P군은 대학 2학년 신체검사에서 에이즈 판정을 받고 청운의 뜻을 접어야 했다.

또 최근 일본 국제의료센터에는 유학생 비자로 체류 중인 20대 한국 여성이 비밀리에 에이즈로 입원, 치료받는 장면이 몇몇 국내 교수들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15만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체류 노동자들에 의한 에이즈 확산도 경계 대상이다. 에이즈 감염자로 밝혀져 출국당한 외국인은 올 4월까지 1백명을 넘어섰지만 "15만명으로 추정되는 불법 체류자 수를 감안할 때 빙산의 일각" (권관우.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사무총장)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에이즈 대란(大亂)멀지 않았다〓전문가들은 한국의 에이즈 상황을 '폭풍전야' 에 비유하고 있다.

"감염자수가 급격하게 점프하기 직전 상황"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교수.감염내과)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90년 2백여명이던 한해 신규감염자수가 91년 4백50명으로, 태국은 87년을 기점으로 감염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자국 내 이성간 접촉을 통한 감염 증가▶다양화한 매춘 경로▶주부들의 감염확대 등 현재 우리의 상황이 그와 유사하다는 것